“걱정마세요. 괜찮아질 거예요”
재무단 화요팀 법성화 보살을 만난 날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산했다.
“솔직히 불자라고는 하지만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그냥 부처님이 좋고, 절에 오면 편안한 신도일 뿐입니다.”
법성화 보살의 고향은 불교도시 부산이다. 부모님은 불자였지만 사찰보다 친구 따라 교회를 더 많이 찾곤 했다. 그러다 학창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을 해야 했다. 마침 가까운 사찰에서 며칠 머물 때였다. 주지스님이 차를 마시며 들려주던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
“그냥 쉬어, 음식 가리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먹어,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 위안을 얻었다. 몸과 마음을 쉬고 보니 병세가 빠르게 회복됐다. 사찰은 경건한 곳이고 스님은 범접하기 힘든 분이라는 선입견도 깨졌다. 이후 힘들거나 좋을 때나 사찰을 즐겨 찾았다.
세월이 흘러 딸아이가 학생이 되고 진로문제로 힘들어했다.
“제 욕심까지 덧붙여져서 아이가 고생했습니다. 주위에서 오백전 기도를 권했습니다. 집에서 증심사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였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어딘들 가지 못할 곳이 없었습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백전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증심사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딸아이의 입시 스트레스로 법성화 보살 몸의 한쪽에 마비가 오는 이상증상도 보였다. 처음 오백전을 찾던 날, 삼배를 하고 바라보니 왼쪽 편에 계시던 나한님 한 분이 씽긋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다독거려주는 듯 했다.
학창시절 요양 차 찾았던 절에서 스님이 들려줬던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떠올랐다.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서도 여유가 생겼다.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봉사도 참여했다. 공양간 봉사를 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몸의 이상도 사라졌다. 더불어 딸아이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고 지금은 사회인으로 제몫을 다하고 있다.
오백전에서 기도할 때도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하루는 어느 보살님이 ‘절에서 기도하고 공양하지 않으면 공덕이 되지 않는다’며 후원으로 이끌었다. 기도만 하는 외골수 법성화 보살에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이었다. 밥 먹은 그릇을 스스로 씻고, 그러다가 설거지 봉사를 하게 됐다. 공양간 봉사를 하면서 도반들의 얼굴이 눈에 익혀졌다. 대화를 나누는 도반이 생기고 더불어 봉사를 하면서 수줍음 많은 성격도 바뀌었다. 봉사는 참으로 묘했다. 자신의 일은 힘들어도 남을 위해 하는 일은 피곤하지 않았다. 법성화 보살은 “봉사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복을 구하는 불자였다”고 고백하는 법성화 보살은 지난해 증심사에서 진행한 <대승기신론> 강의를 받으면서 ‘마음 들여다보기’에 힘쓰고 있다. 요즘 <자비관>으로 마음 찾기 수행을 하고 있다. 하루에 몇 분이라도 명상을 놓치지 않으려 힘쓰고 있다. 마음집중으로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살면서 만나는 문제의 답을 찾고 있다. 모든 기도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과 건강, 원만하고 편안하기’를 기원하며 회향한다.
종무소에서 만난 법성화 보살은 온화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작지만 야무진 체구에서 풍기는 에너지가 강하다.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의 긍정 에너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