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마음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 설화[愚公移山(우공이산)]가 나온다. 남 탓 세상 탓만 늘어놓고, 지레 쉽게 포기하는 이들이 한 번쯤 깊이 새겼으면 하는 이야기이다. 불교 경전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수없이 많다. 《잡보장경》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아득한 옛날 설산 한 기슭에 큰 대나무숲이 있었다. 그 숲에는 많은 동물이 살고 있었다. 숲의 동물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 동물들 가운데 매우 똑똑하고 자비로운 앵무새가 한 마리 있었으니, 그 앵무새의 이름은 ‘가장 기뻐하는 자’라는 뜻의 환희수(歡喜首)였다.

어느 날이었다. 깊은 밤 갑자기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사나운 바람이 온 숲을 휘젓고, 울창한 대나무숲이 풀어헤친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사정없이 나부꼈다. 그 바람에 마른 대나무가 서로 부딪쳐 불꽃이 튀고, 그 불씨가 마른 낙엽에 옮겨붙고 말았다. 불길은 곧 거센 바람을 타고 번져 온 숲을 집어삼킬 듯 높이 치솟았다.

한밤중 갑작스러운 소동에 놀란 숲의 동물들이 사방으로 날뛰었지만, 그들이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겁에 질린 동물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항상 기쁨에 넘쳐 활기차게 숲을 날아다니던 앵무새 환희수가 그 광경을 보고 깊은 자비심을 일으켰다. 앵무새는 공포에 질린 숲속 친구들을 남겨두고 차마 혼자 도망칠 수 없었다.

‘나는 튼튼한 두 날개가 있으니, 얼마든지 하늘을 날아 이 숲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저 친구들은 날개가 없으니, 불길에 갇혀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숲 밖에 큰 연못이 하나 있었다. 앵무새는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불길을 뚫고 연못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날개에 물을 흠뻑 적시고 다시 숲으로 날아와 거센 불길을 향해 날개를 털었다. 앵무새가 날개로 떨군 물방울은 불을 끄기는커녕 불길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앵무새는 멈추지 않았다. 불길에 갇혀 공포에 떨던 동물들이 숲과 연못을 끝없이 오가는 앵무새의 애타는 몸짓을 보고 소리쳤다.

“환희수야, 우리를 살리려고 이렇게 애쓰니 고맙구나. 환희수야, 그만하면 됐다. 그러다 너까지 불에 타죽겠다. 인제 그만 멈추어라. 너라도 살아서 얼른 이 숲을 벗어나거라.”

하지만 앵무새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앵무새의 간절한 마음에 감동하여 제석천의 궁전이 크게 흔들렸다. 깜짝 놀란 제석천의 주인 석제환인이 궁전이 크게 흔들린 까닭을 천안(天眼)으로 살펴보았다.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니, 앵무새 한 마리가 시뻘건 불길 속에서 숲속 동물들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앵무새의 갸륵한 정성에 감동해 자신의 궁궐이 흔들린 것이었다. 석제환인이 사바세계로 내려와 앵무새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쁘냐?”
“숲에 불이 났습니다. 날개를 적셔 불을 끄려고 이렇게 바쁩니다.”
“이 숲은 넓이가 수천리인데, 네가 날개를 적셔서 뿌리는 물은 고작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이 큰불은 끌 수 없으니, 그만 포기하거라.”

그러자 앵무새가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제 두 날개는 튼튼합니다. 제가 게으름 떨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면 반드시 불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날개에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오른쪽 날개가 타면 왼쪽 날개 하나로라도 불을 끌 것입니다.”
“그 왼쪽 날개마저 타버리면?”
“몸통에 물을 적셔 기어가서라도 끌 것입니다.”
“그러다 불에 타 죽으면?”
“다음 생에 새 몸을 받아 반드시 저 불을 끄고 말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것이냐?”

그러자 앵무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공포에 떨며 울부짖는 저 숲속 친구들이 너무 가엾습니다.”

친구들을 아끼는 앵무새의 마음에 크게 감동한 석제환인은 곧 하늘에서 큰비를 내렸다. 그러자 숲을 태우던 불길이 곧바로 꺼졌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다. 숲속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나운 불길로 뛰어들었던 앵무새가 바로 부처님의 전생이다. 친구를 아끼고, 이웃을 아끼고, 그 친구와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은 이런 공덕이 쌓여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성자(聖者),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해봐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해보고 나서 할 소리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레 ‘안될 거야’ 하고 단정하지는 말자. 앵무새조차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일으켰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쉽게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부처님처럼 타인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공자께서 “덕 있는 자는 외롭지 않나니, 반드시 함께하는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 하시고, 옛말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자.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