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의 증심사
저는 지금 증심사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증심사 어디에도 증심사는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가리킬 수 있는 그 무엇.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두드리거나 흔들면 소리도 나는 그 무엇으로서의 ‘증심사’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와, 나무, 흙, 꽃, 법당건물 같은 것들 뿐입니다. 이렇게 따지자면 ‘삼성’같은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이비통’같은 명품 […]
오백전 옆 두 개의 석탑에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우고 있습니다.‘저들은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석양을 보았을까?그 각각의 일몰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저기에 붙박혀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을까?’말없이 서 있는 석탑을 보며 생각합니다. 증심사는 9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1,2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오층석탑의 창건시기는 고려시대, 칠층석탑은 조선시대라 합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증심사를 터전 삼아 살다
범종각 기와가 흘러내렸습니다. 혼자서 그리한것은 물론 아닙니다. 지난겨울 역대급 폭설의 흔적이지요. 무거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기와가 제 모양을 잃고 흐트러졌지만, 추운 날씨는 흐트러진 상태를 그대로 붙잡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낮 동안 영상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얼어붙었던 것들이 하나둘 녹기 시작했습니다. 동장군에 붙잡혀 있던 기와도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흘려 내리고 있습니다. 벌써 가장자리는 떨어져 버렸습니다. 봄의
계묘년이 밝았습니다.운문 스님이 대중들에게 묻기를, “보름 전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으니 보름 이후의 일에 대해 말해보아라.”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자, 스스로 답하기를“날마다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보름은 깨달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운문 스님은 깨달음 이후의 삶은 어떠한 지 물어보는 것이겠지요. 모든 날들이 다 좋은 날이면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좋다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좋다고 할 수 있을
신명과 사람의 사이, 하나의 이치로 감통하니 성정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거의 차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을 기쁘게 하여 모두 신명의 공덕에 춤을 춘다면, 신명이 기쁠 뿐만 아니라 상제께서도 훌륭히 여길 것입니다. 진실로 병들고 파리하여 탄식하거늘 신령의 은혜 끝까지 내려 주지 않으시어 사람들 머리 아파하며 모두 호소하는데 어찌 신령께서 들어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중략) 지난 기근 겪은 지 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