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처님 모신 고을…요즈음 천지가 꽃무릇
불갑사가 자리한 불갑산은 꽃무릇으로 뒤덮여 마치 불이 난듯하다. 꽃무릇이 아름다운 불갑산과 불갑면 지명은 사찰 불갑사에서 유래되었다. 불갑사는 부처 불(佛), 첫째 갑(甲), 절 사(寺), 다시 말해 ‘첫 번째 부처님 집’이라 풀이할 수 있다. 마라난타 존자가 법성포에 첫 발을 내디딘 후 60리가량 떨어진 어머니 산, 모악산 자락에 첫 번째 부처님 집을 건립했다. 불갑사이다. 이후 불갑사가 자리한 산은 불갑산, 땅 이름은 불갑면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백제의 불교문화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갑사에서는 옛 백제불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중앙을 자세히 보면 보주 형식의 장식물이 하나 있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인도식 탑, 스투파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용마루의 보주함 대신 청기와로 대신하기도 했으나 백제 땅이었던 공주 마곡사, 소양 위봉사, 강화 전등사 전각의 용마루에는 지금도 청기와가 남아있다. 지붕 용마루 중앙에 보주함을 얹는 건축 양식은 네팔, 남 중국,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옛날, 아이가 없어 고민이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부처님전에 간절히 빌어 뒤늦게 외동딸을 하나 얻었다. 이 아이는 얼굴이 고울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효심 지극한 딸은 사찰에서 백일간 탑돌이를 하며 부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절에는 젊은 스님이 있었고, 탑돌이 하던 여인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젊은 스님은 말 한마디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여인이 탑돌이를 마치고 돌아가자 스님도 시름시름 앓다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 스님이 죽은 자리에 이름 모를 풀꽃이 돋아났다. 이상하게도 풀꽃은 푸른 잎과 붉은 꽃이 함께 피지 못하고 번갈아 났다. 그 모습이 젊은 스님과 사모하는 연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같아 상사화(相思花)라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이즈음 불갑산을 붉게 물드는 풀꽃은 사실 상사화가 아닌 꽃무릇이다. 상사화는 원산지가 일본이며, 꽃무릇은 한국이다. 상사화는 여름에 피고, 꽃무릇은 가을에 핀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자란 뒤 꽃이 피지만, 꽃무릇을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자란다. 상사화는 색이 다양하지만 꽃무릇은 강렬한 붉은색 하나이다. 상사화는 단아한 편이지만 꽃무릇은 화려하다. 꽃 이름과 전설 덕분에 상사화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지만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꽃무릇에서 백제문화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