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극치, 여기가 극락
섬으로 이뤄진 완도군, 진도군, 신안군 등은 대부분 남도에 있다. 이렇듯 남도에는 섬이 많다. 남도에 섬이 몇 개가 되는지는 귀신도 모른다고 할 정도이다. 밀물과 썰물로 인해 섬이 되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진도군 가사도는 섬 속의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에 딸린 조도(조도면)에서도 다시 가사도를 중심으로 가사도리라는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다. 진도에는 23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딸려있고, 그중에 조도는 154개의 섬으로 이뤄진 면이다. 여기에 가사도리는 가사도를 중심으로 10여 개의 섬이 모여 이루어진 군도이다. 가사군도를 형성하고 있는 섬들은 모두 스님과 인연이 있다.
옛날, 진도 서쪽 지력산 동백사에는 깨침을 향해 정진하는 스님이 계셨다. 스님은 날마다 해 질 무렵이면 지력산에 올라 서쪽바다 해넘이를 바라보았다. 하루는 붉은 노을사이로 날아가는 학을 쫓아 스님도 하늘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한 스님은 학을 쫓아 가다가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스님이 입고 있던 가사가 떨어져 섬이 되어 가사도가 되었다고 한다. 스님의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 윗옷이 떨어진 곳은 상의도, 발가락이 떨어진 곳은 발가락 섬인 양덕도, 엄지 손가락이 떨어진 곳은 손가락 섬인 주지도, 그리고 스님의 심장과 스님이 가지고 있던 목탁이 떨어진 곳은 불도(佛島)가 되었다.
모두 가사도를 중심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는 섬들의 이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 보살의 자비스런 마음은 보리섬인 교맥도, 신중들이 모여사는 신도, 예불시간이면 북소리가 울린다는 북송도, 관세음보살이 주석하고 계시는 우이도 등이 자리해 있다. 가사군도는 유일하게 불교로 이루어진 군도이고, 가히 부처님 세상, 정토세계라 하겠다. 이 가운데 불도는 섬의 봉우리 동백나무가 부처님을 닮고, 섬 모양이 목탁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부처 섬’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지만 퇴적암층이 차곡차곡 쌓여서 마치 탑처럼 보여 지역의 섬 사람과 수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사자도로 불리는 광대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파도치는 모습이 장관이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자리한 바위굴의 돌 부처는 부처님오신날 지역민과 불자들이 찾아와 공양올린다고 한다. 가사군도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해외에도 잘 알려졌다.
구 한말인 1816년, 영국해군 장교이자 여행가인 바실 홀이 일본에서 돌아가는 길에 조도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 후 영국으로 돌아간 바실 홀은 <조선 서해안 및 류큐 제도 발견 항해기〉(한국어판 ‘10일간의 조선항해기’)를 냈다. 이 책에서 바실 홀은 가사군도가 자리한 조도에서의 전망을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바로 서방정토 극락을 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