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면 불갑산 불갑사(佛甲寺)➊

꽃무릇은 화려하고, 상사화는 단아하다


이즈음 전남 영광군 불갑면은 붉은 상사화가 한창이다. 초가을에 접어들면서 불갑면에 자리한 불갑산(516m)과 불갑사는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천지가 마치 불이 난 듯 붉게 물든다. 영광 불갑면과 불갑산 이름은 사찰 불갑사에서 유래됐다. 불갑사는 이름그대로 부처 불(佛), 첫째 갑(甲), 절 사(寺), 다시말해 ‘첫 번째 부처님 집’이다.

지금부터 1,700년 전(384년. 백제 침류왕)이었다. 위대한 부처님 가르침(法)을 성인(聖人)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에서 배를 타고 백제로 건너왔다. 오늘의 영광 법성포(法聖浦)에 첫발을 내디뎠다. 마라난타존자는 직접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가까운 산(불갑산)에 집(불갑사)을 지어 모셨다. 백제 땅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고, 첫 사찰이 건립된 것이다.

불갑사에 상사화가 한창인 이때, 사찰 이야기에 앞서 상사화부터 살펴보자. 지난달, 한 달 내내 불갑산에 자리한 불갑사는 상사화 축제(9월 15일~24일)로 들썩였다. 불갑산 남쪽에 자리한 함평 용천사도 같은 시기에 꽃무릇 축제가 열렸다. 검소하고 소박한 사찰에 너무 붉고 강렬해서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은 상사화, 이 풀꽃은 어느 젊은스님의 절절한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온다.

옛날,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가까운 절에서 아이 갖기를 간절히 빌어 뒤늦게 외동딸 하나를 얻었다. 딸 아이는 얼굴이 고울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갑자기 죽게 됐다. 효심 지극한 딸은 사찰의 부처님을 찾아 아비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사찰에 머물면서 백일동안 기도하며 절마당에 있는 탑에서 탑돌이를 했다. 마침 그 절에는 젊은 스님이 수행중이었다. 스님은 밤마다 탑돌이하는 처녀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렇지만 불가에 귀의한 몸이기에 여인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끙끙대기만 했다. 백일기도가 끝나고 탑돌이를 하던 처녀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이후 스님은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 스님의 유골이 뿌려진 자리에 이름 모를 풀꽃이 돋아났다. 그런데 별스럽게도 푸른 잎과 붉은 꽃이 함께 피지 않고 번갈아 피었다. 사람들은 이 꽃을 상사화(相思花)라 불렀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모습이 젊은스님의 모습과 닮았던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상사화 전설이다.

상사화가 한창인 초가을이면 불갑산 불갑사는 상사화 축제를 펼친다. 불갑산 너머 남쪽에 자리한 함평 용천사는 같은 시기에 꽃무릇 축제를 연다. 같은 꽃을 두고 펼치는 축제이름이 서로 다르다. 본래 상사화는 백합 목(目)>수선화 과(科)>상사화 속(屬)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식물체계상 상사화 종(種)과 꽃무릇이라 불리는 석산 종은 모두 상사화 속(屬)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상사화와 꽃무릇을 통틀어 상사화라 부른다. 그렇지만 상사화와 꽃무릇은 꽃이 피는 시기와 모양이 비슷해 헷갈리지만, 잎이 나고 자라는 시기가 엄연히 다르다. 상사화는 칠월칠석을 전후로, 꽃무릇은 초가을 즈음에 꽃을 피운다. 꽃무릇은 9월 초순에 꽃대가 올라와 추석 전후로 절정을 이룬다. 그 후 꽃송이가 시들면 그때서야 잎이 올라온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이 완연한 상사화이다.

상사화는 붉은 상사화, 노랑 상사화, 위도 상사화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꽃무릇은 한 종류 뿐이다. 상사화가 이름과 전설 덕분에 더 유명하지만 꽃무릇이 더 붉고 강렬해 인기가 많다. 꽃무릇은 화려하고, 상사화는 단아한 편이다. 이즈음 불갑산을 붉게 물들이는 것은 꽃무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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