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samatha, 止)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서 살면서, 가부(跏趺)를 틀고 앉아 마음을 집중하여 정념(正念)에 들게 합니다.
그리고 수식관(數息觀)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부정관(不淨觀)이나 백골관(白骨觀)에도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도 관찰하지 않으며, 지, 수, 화, 풍의 사대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식(識)이라고도 관찰하지 않습니다.
모든 망상을, 그 망상이 생겨나는 찰나(刹那)에 제거하며, 드디어는 망상을 제거한다고 하는 생각조차도 버려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디 그 자신의 특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은 찰나의 찰나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찰나의 찰나에 소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마음 밖에 경계를 만든 다음에, 마음에 의해서 마음을 제거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또 만일 마음이 바깥 대상을 집착하여 산란해지면, 그 산란한 마음을 다스려서 정념(正念)에 들게 됩니다. 이 정념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일 뿐이며, 바깥쪽의 대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 그 마음에도 자신의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념에 들면 마음을 찰나의 찰나에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좌선을 마치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수면을 취하는 등의 움직일 때, 멈출 때, 앉을 때, 누울 때, 어느 때든지 항상 마음을 집중하는 방편을 잃지 않게 하여 법성은 부동하다는 도리를 관찰해야만 합니다.
좌선을 하여 마음에 고요함을 얻으면, 마음은 정념에 들어가므로, 사마타의 힘이 맹렬하고 예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수순할 수 있게 되며, 더욱 진보해서 이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이것이 사마타의 완성입니다.
진여삼매를 얻음에 따라 번뇌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믿는 마음이 증장하여 십신(十信)의 계위를 완성하고 초주(初住)의 계위에 들어가면, 퇴보하는 일이 없는 단계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다만 진여를 의혹하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 중죄를 범하여 업의 장애가 두터운 사람, 아만이 강하고 게으른 사람은 제외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여삼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