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는 재(齋)의식의 전반을 살펴보겠다. 재의식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관욕의식이다. 관욕(灌浴)은 천도재를 지낼 때 가장 처음 하는 의식이다. 49재를 지낼 때는 보통 막재 때 지내지만 초재 때 지내는 것이 원칙이며, 증심사에서도 초재 때 관욕을 지내고 있다. 우리가 집을 나서던지 중요한 자리에 갈 때 목욕을 하듯 영가님도 초재에 목욕을 하고 나서 심판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관욕이란 영가의 업장을 씻어내는 의식이다. 간단한 국수 한 그릇 정도를 올려 공양을 대접한다. 병풍 뒤쪽에는 영가를 목욕시키기 위한 물품과 종이로 된 새 옷과 신발 등이 준비된다. 그 옆에는 세숫대야가 있는데 향탕수라 하여 영가가 업장을 소멸하는 물이다.
관욕의 절차는 이렇다. 먼저 재를 주관하는 법주스님의 지시에 따라 재를 보조하는 바라지스님이 상주로부터 위패를 받아 병풍 뒤의 관욕단으로 모신다. 위패를 모시고 영가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히는 등의 의식을 병풍 뒤에서 치른다. 의식이 끝나면 바라지스님이 위패를 모시고 나와 재주에게 위패를 건넨다. 영가님은 몸이 없기 때문에 위패를 든 재주가 영가를 대신하여 부처님을 바라보고 서서 부처님과 대면하게 된다.
저두하고 난 후에는 모두 스님을 따라 의상조사 법성게를 독송한다. 이 때 법당을 돌기도 하는데 이는 영가를 영단에 모시기 위한 절차로, 영단에 도착하면 재주는 모셔온 위패를 영단의 연화대에 모셔놓고 염불이 끝날 때까지 모두 영단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다.
한편 관욕단에서는 인예향욕이라 하여 영가를 욕실로 인도하는 염불을 한다. 인예향욕이 끝나면 신묘장구대다리니를 독송한다. 법당을 한 바퀴 도는 등 영가를 모시고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전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다음으로 귀를 닦는 진언인 정로진언을 하고, 그 뒤에 입실게를 하며 욕실에 들어가는 게송을 한다.
여러 여건상의 이유로 관욕을 법당에서 진행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서 영가님이 목욕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전에는 증심사에서도 법당에서 관욕의식을 봉행했지만 근래 들어서 관욕단을 별개의 장소로 옮기기로 하여 지장전에서 지내고 있다. 특히 영가는 중음의 세계에 있기에 아주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때문에 재주를 비롯하여 재에 참여하는 사람, 또한 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경내에 있는 불자들은 조용한 언행을 주지하고 있기를 당부한다. 관욕절차를 마치고 이어서 부처님 전에 불공의식을 올린다. 불공이 끝난 후엔 설법을 하고 관음시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관음시식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영가에게 공양과 설법을 베풀어 영가가 집착을 끊고 극락왕생하도록 천도하는 의식이다. 종사나 대종사, 큰스님이 입적하신 경우에는 관음시식이 아니라 종사영반을 한다.
관음시식의 절차는 거불-창혼-착어-진령게-풍송가지-신묘장구대 다라니-화엄경사구게-파지옥진언-해원결진언-보소청진언-청혼-향연청으로 이어진다. 부처님의 명호를 칭해서 가피를 구하여 영가에게 법을 설하고 귀의시키는 과정이다. 법문이 끝나면 음식을 올리는데 이 때에도 수위안좌진언-다게-변식진언-시감로수진언-일자수 륜관진언-유해진언-칭양성호-시귀식진언-보공양진언-보회향진언-장엄염불 등의 절차를 거친다.
관음시식의 과정을 하나로 말하자면, 영가를 이런 연유로 모셨으 며 부처님께서 영가를 어여삐 여기어 극락세계로 잘 인도해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것이다. 영가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떠나라는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며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명호 를 부름으로써 천도를 하는 방식이다.
천도(遷度)는 좋은 곳으로 천거 하여 보내준다는 뜻이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시간에 공부했듯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유교식 조상숭배 사상을 따라 조상을 집으로 불러 대접하는 것이지만, 절에서 하는 재는 부처님에 게 공양을 올리고 영가를 천도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보다 자세한 재의식의 절차와 의미가 알고 싶다면 증심사에서 발간한 책자 <제사의 모든 것>을 일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