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순례기

캄보디아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십중팔구 ‘앙코르와트’ 유적을 떠올린다. 앙코르와트는 고대 동남아시아의 맹주였던 크메르 제국의 정치, 종교, 사회,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불교와 힌두교가 혼재된 사원의 구조물들은 캄보디아만의 독특한 종교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광주 무등산 증심사(주지 중현 스님)는 2월 20일부터 2월 24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의 문명을 찾아 불교문화유적답사에 나섰다.

증심사는 매년 해설자와 함께하는 국내 불교유적 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해외 불교유적 순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답사는 힌두교와 불교유적이 혼재된 캄보디아 씨엠립에 위치한 크메르 문명 초기유적과 불교유적, 앙코르와트를 탐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번 답사에는 증심사 주지 중현 스님을 비롯해 신도 24명이 참여했다. 답사에 앞서 중현 스님은 “이번 답사는 예전처럼 많은 준비를 하지 않고, 편하게 다른 문화의 힌두와 불교유적을 보는 일정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순례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동남아 호령했던 크메르 왕국

현재는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캄보디아는 한때 동남아와 중국 남부까지 지배했던 제국이었다. 9~15세기 동남아시아에 존재한 크메르 왕국은 캄보디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인류사에 위대한 유산인 앙코르 유적을 비롯해 그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과 문화, 정치적 유산을 남기고 멸망했다.

특히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는 캄보디아 예술과 문학이 꽃 피우면서 엄청난 문화 발전을 이룩했고, 당대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대도시이기도 했다.

자료에 의하면 앙코르의 전성기 인구는 무려 70~90만명이었다. 동시대 런던의 인구는 7만명이었고, 로마는 3만명, 베이징의 인구가 70만명에서 120만명 사이였다고 하니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인구수를 가진 거대 도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의 도시 앙코르톰

캄보디아는 현재 인구 중 97%가 불교를 신앙하는 불교국가로 불교는 캄보디아인에게 토착종교에 가깝다.

캄보디아가 불교를 숭앙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 앙코르톰이다. 앙코르톰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운 성곽 도시로 크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앙코르톰을 순례 셋째 날 찾았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높이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톰을 둘러싼 4면의 성곽은 히말라야 산맥(우주를 둘러싼 벽)을 의미하며, 해자는 대해(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건립 당시에는 목조 건물도 있었으나 지금은 석조 건물만 남아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참파로부터 국토를 회복한 뒤 1181년 왕으로 등극한 후 국교를 불교로 바꾸었다. 그는 대승불교의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사업을 진행하고, 전국에 병원을 만들어 모든 계층에 개방했다.

앙코르톰을 대표하는 유적은 불교사원인 바이욘 사원이다. 중앙에 자리한 42m의 본전을 두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고 동쪽에는 참배로가 있다. 사원 안 곳곳에는 37개의 사면 관세음보살상이 미소를 짓고 있다. 본래는 54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온화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사면 관세음보살상은 자야바르만 7세를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학설에 따르면 적극적인 사회사업을 펼친 자야바르만 7세는 자기 자신을 대중불교의 보살 가운데 가장 자비로운 관세음보살과 일치시키려고 했고, 이를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형상화해 바이욘 사원에 새겼다.

바이욘 사원의 정중앙에는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는 중앙탑이 있고 1층 외부회랑과 2층 내부회랑 사이에는 16개의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불교 승려들이 거처한 곳으로 추정된다.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사원 중에는 따 프롬 사원도 유명하다. 따 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건립한 것으로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자신의 어머니를 같게 한 신상을 조성했다. 비문 기록에 의하면 따 프롬 사원은 400명의 남자, 18명의 고승, 2740명의 승려, 2232명의 수련자 등 1만2640명이 거주했을 정도로 큰 사원이었다.

현재는 커다란 나무뿌리에 침식당해 유적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반대로 무화과, 보리수 등의 뿌리가 벽과 지붕 위에 내려앉은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과 더불어 일체가 무상함을 가르쳐 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는 왕도를 뜻하는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합쳐진 이름이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추진됐고, 그가 죽은 후에도 무려 37년의 기간 동안 건립됐다. 이때까지는 힌두교사원이었으나 이후에는 불교사원으로 대체됐다. 그렇지만, 적지 않는 부조와 구조물들은 힌두교 문화를 담아내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동서 1.5㎞, 남북 1.3㎞에 이르는 광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으로, 중앙에 있는 신전은 세 겹의 회랑이 감싸고 있고, 회랑 바깥쪽으로 주벽을 만들고 외부에 해자를 만든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앙코르와트의 회랑은 중앙 탑을 기준으로 3개 층에 해당하는 3개의 회랑이 있다. 각 회랑의 부조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영광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1층에 해당하는 제3회랑의 경우 북쪽 회랑은 신들을 묘사했고 남쪽 회랑은 왕과 왕의 영역을 조각했다. 2층에 해당하는 제2회랑에는 1500명이 넘는 압사라와 여신들이 조각됐다.

가장 높은 3층은 제1회량과 성소인 중앙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12개이다. 매우 가파르고 위험해 현재는 안전한 임시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밖에도 순례단은 크메르 왕국의 초기 유적지인 바콩(Bakong), 롤레이(Lolei), 프레아코(Preah Ko)로 이뤄진 룰루오스 유적군을 답사했다. 씨엠립 시내 남동쪽에 위치한 3개의 사원은 앙코르 시대 초기인 9세기 후반에 건설된 크메르 예술의 초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순례단은 캄보디아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톤레샵 호수와 수상촌을 둘러봤으며, 독재자 폴 포트가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유골을 모신 사원도 참배하고 그들의 넋을 기렸다.

순례에 참여한 최순자 불자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특히 유물의 보존을 통해 후손에게 남기는 것은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현 스님은 “불교와 힌두교가 혼재된 캄보디아만의 불교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국가의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해외순례 신행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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