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생애와 불교의 성지

증심사 대웅전 ‘팔상성도’와
인도 불교성지를 통해 보는 부처님 오신 참 뜻

Maya Devi temple, the birth place of Gautama Buddha, in Lumbini, Nepal.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탄생. 룸비니 마야데비 사원. 앞 아소카 대왕이 남긴 석주로 인해 부처님의 탄생지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불기2567(2023)년 부처님오신날, 5월 27일을 앞둔 5월은 일 년 중 어느 달보다 재적사찰로의 출입이
잦아지고는 합니다. 증심사 신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봉축일을 맞이하기 전에 절에 가서 연등을 달아야 할 것이고요. 증심사를 찾는 참배객들을 위한 공양 준비에 손을 보태기도 하시겠지요.

이렇게 사찰 출입이 잦은 5월.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는 마음보다 기계적으로 연례행사를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마음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합니다.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는 마음은 부처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전법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돌아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번 호 월간<증심>에서는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며 ‘팔상성도’와 그 실제 무대인 인도의
불교성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한 인간으로 사바세계에 나투어 몸소 고단한 삶을 살아내셨던 부처님.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의 생애
중 주요한 8개의 장면을 꼽아 그림으로 담아 놓은 것을 ‘팔상성도’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석보상절>에 언급된 여덟 장면을 기본으로 하는 팔상성도는 우리나라 주요 사찰 전각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흔하다는 이유로, 전각 안이 아닌 밖에 있다는 이유로 되레 허투루 대하기 쉽습니다.

증심사에도 팔상성도가 있습니다. 대웅전 정면을 제외한 외벽 3면에 걸쳐 그려진 10폭의 그림이 그것입니다. 증심사 팔상성도는 <팔상록>의 서문에 해당하는 매화공불買花供佛로 시작합니다. 연등 부처님께 꽃을 올리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선혜동자가 보입니다. 꽃을 받은 연등 부처님은 선혜동자에게 내세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리지요. 이어 본격적인 팔상이 전개됩니다.

매화공불買花供佛


  • 01. 도솔래의 兜率來儀

연등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내생에 나기 전까지 도솔천 내원궁에서 지내던 호명보살(선혜동자)은 사바세계로 나갈 집으로 옛 인도 카필라국의 정반왕궁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흰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태중으로 들어갑니다.

성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아쇼카 왕이 세웠다는 마하보디 대탑이 웅장하게 서있다.

  • 02. 비람강생 毘藍降生

부처님을 잉태한 마야부인은 산달이 되어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태자를 출산합니다. 도상의 오른쪽으로 무우수 가지를 붙잡은 마야부인의 왼쪽 겨드랑이를 통해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일곱 걸음을 걸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언하고 있는 태자가 보입니다. 머리 위로 아홉 마리의 용이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목욕을 시킵니다. 태자의 탄생을 천녀와 천인들이 기뻐합니다.

아기 부처님이 태어난 땅 룸비니는 현재 네팔 남부 타라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0여 국의 사찰을 아울러 ‘룸비니 국제사원구역’으로 지정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마야데비 사원은11 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1943년 무너진 사원과 부조들을 감싼 형태로 재건되어 있습니다. 참배를 하러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허망한 마음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제대로 복원하거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마야부인이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고 서서 싯다르타를 출산하고 있는 부조 역시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만 겨우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 03. 사문유관 四門遊觀

카필라바스투, 즉 카필라성에서 고귀하고 총명하게 자란 싯다르타 태자는 성밖으로 유람을 떠날 때마다 충격적인 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궁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초라하게 늙은 노인을 만나고요. 육체의 노쇠와 병마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신음하고 있는 병자를 목격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사람들 곁에는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육신이 미동 없이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 태자의 마음이 파문을 일으킵니다.

인연. 부처님께서 가장 사랑했던 도시 바이샬리. 비구니 승단의 탄생지이자 부처님께서 열반 3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으며, 부처님의 8과의 사리중 하나를 봉안했던 곳이기도 하다.

  • 04. 유성출가踰城出家

“어떻게 하면 세상의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저렇듯 초연할 수 있을까?” 태자는 성을 떠나 그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합니다. 출가를 여쭈는 태자를 왕과 왕비는 결코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아내인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도 태자의 중대한 결심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어느 까만 밤, 태자는 마부 찬타카를 깨워 당신의 하얀 말 칸타카를 타고 성벽을 훌쩍 뛰어넘어 집을 떠납니다. 천녀와 천신들이 이 은밀한 야반도주를 호위합니다.

  • 05. 설산수도 雪山修道

머리카락을 자르고 화려한 옷을 벗음으로써 자연인으로 돌아간 고타마 싯다르타는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6 년의 고행을 단행합니다. 그러나 고행으로도 원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생각합니다. 극단이 아니라 극단을 여의는 것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요. 싯다르타는 마을 농부의 딸 수자타가 공양 올린 우유죽을 먹고 네란자나 강에서 찌든 몸을 깨끗이 씻어냅니다. 이어 네란자나 강 건너의 전정각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정각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곳이 바로 인도 비하르주에 위치한전 정각산입니다. 과거에는 불가촉천민이 모여 살고 시체를 내다 버리는 땅이었습니다.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산책을 하듯 계단을 오르다 보면 자그마한 사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법당에 드러서면 탄식이 나올 만큼 야윈 부처님 고행상이 있고, 그 주위로는 찬탄의 꽃과 초 공양이 빼곡합니다. 법당 바깥, 기세 좋게 솟아 있는 암벽 한 쪽에는 서너 사람이 넉넉하게 앉을만한 굴이 있습니다.

유영굴입니다. 싯다르타가 6년의 고행을 그만두고 정각을 이루기 위해 이 산 중턱에 자리를 잡으니 산신과 천신이 산 아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기를 간청합니다. 다만 이 굴에 살고 있던 용왕만은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부탁하니, 용왕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당신의 그림자를 남겨놓고 떠났다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06. 수하항마 樹下降魔

다음 그림은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정각을 이루려는 고타마 싯다르타를 방해하는 마군 무리의 분투가 담겨 있습니다. 석가족 출신의 성인이 등장하면 자신들의 마계가 파멸할 것을 염려한 마왕 파순과 그의 권속들은 필사적으로 성인의 탄생을 저지하려 합니다. 무력으로 위협해보기도 하고 마왕 파순의 아름다운 세 딸이 ‘미인계’로써 유혹해보지만 부처님은 이 아름다움의 정체가 갈애, 혐오, 탐욕이라는 것을 꿰뚫으며 그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내 보입니다.

부처님이 마왕 파순에게 말합니다. “이 물병을 움직여보라. 그렇지 못하면 나는 너의 항복을 받겠다.” 조그마한 물병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는 마왕 무리의 도전이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결국 물병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침내 부처님은 마왕의 항복을 받고 등정각을 이룹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땅 보드가야는 명실상부 최고의 성지인 만큼 늘 각국의 순례자들로 붐빕니다. 그 중심에 마하보디 사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정각의 순간을 지켜본 보리수나무 주위로 기도와 독송, 절, 명상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후7 일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면서 선정에 들었다는 7곳의 성스러운 곳, 칠선처를 둘러보는 것도 마하보디 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입니다. 기원 전3 세기, 불법을 지극하게 숭상한 아소카 대왕의 석주도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 07. 녹원전법 鹿苑轉法

깨달은 부처님의 첫 설법이 녹야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을 들은 제자들은 부처님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비구입니다. 다섯 비구는 싯다르타가 깨달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고행이 힘들어서 타락해버린 싯다르타가 오더라도 본체만체하자’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에 감화되어 저들도 모르게 버선발로 뛰어나와 부처님을 맞이합니다. 사슴도 토끼도 아름다운 현장에 참석합니다. 그 자리 사르나트영불탑에는 지금도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붉은 벽돌이 기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불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녹 야원의 상징은 거대하고도 독특한 모양의 탑 다메크 스투파입니다. 이제는 더이상5비 구도, 정원을 뛰노는 사슴도 없지만 너른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경을 외고 절을 하는 불자들이 있는 한 부처님의 진리는 면면이 이어져갈 것입니다.

정각을 이룬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로부터4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길 위에서 전법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가다국 왕사성의 현신라 지기르는 영산회상의 무대였습니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화경을 설하신영 축산, 불교 최초의 대중수행터 죽림정사, 부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수행터이자 부처님께서 약 24번의 안거를 난 쉬라바스티 기원정사, 고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나란다 대학 터도 라지기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탑과 승방, 그리고 많은 부분 부서져 방치되고 있는 유적들만이 쓸쓸하게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포교. 라즈기르 영축산.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설하신 곳이다.

수행. 쉬바라스티 기원정사. 전각 간다쿠티와 전단향 부처님이 살아 생전24 번의 안거를 지낸 곳이며,
가장 많은 경이 설해진 땅이다.

설법. 사르나트 영불탑.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처음 영접한 장소를 기념하며 세운 탑이다.

열반. 쿠시나가르. 열반당 안에는 약1 ,500년 전에 조성된6 .1m 길이의 부처님 열반상이 있다.

  • 08. 쌍림열반 雙林涅槃

부처님의 일생도 하이라이트를 지나 삶의 종착지로 향해갑니다. 바이샬리에서 여름 안거를 지낸 부처님은쿠 시나가르로 걸음을 옮깁니다. 팔상도의 여덟 번째 도상은 사라나무 가운데에 모로 누운 부처님의 열반상입니다. 자등명 법등명, 오직 법으로써 등불을 삼으라 하신 마지막 가르침을 남긴 부처님은 고요히 눈을 감고, 제자들은 통곡합니다.

쿠시나가르 열반당에 그렇게 눈 감은 부처님의 상이 있습니다. 법당에 올릴 가사를 정대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순례단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도 있고요. 유난히 엄숙하고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열반상 아래 조각된 아난 존자의 흐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증심사 팔상성도는 8폭이 아닌 10폭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장례 이후 나온 사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덟 나라의 왕들이 다투게 되고, 이를 모두 공정하게 나누는 사리균분(舍利均分)의 모습이 그 마지막입니다. 대웅전 외벽 벽화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면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유난히 깨끗하고 명료한 색감입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은 2010년 대웅전 단청불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단청은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원색(原色)을 주로 사용하는 데 비해 증심사 단청에는 원색과 함께 간색(間色)이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탱화의 평면성과 서양화의 입체성을 두루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증심사 대웅전과 인도 현지의 성지를 오가는 부처님의 생애 여행, 멀미 없이 잘 따라오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는 부처님오신날에는 꼭, 지면 말고 실제 증심사 가람 안에서 부처님 오신 참 뜻을 기려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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