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은 위아래가 없는데…

오늘은 입춘입니다. 하루 중에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입춘이면 문에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이런 문구를 붙입니다. 입춘대길, 봄이 시작되니까 크게 길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건양다경, 양의 기운이 일어서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봄도 오고 양의 기운이 강해지니까 좋은 일만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문에다가 붙여놓고 우리가 소원을 바라는 거죠.

한 해를 시작할 때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경사로운 일만 이어지기를 바라는 게 우리들의 심정입니다. 누구나 다 그럴 것입니다. 근데 한해를 마감할 때는 이런 말을 하죠.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어쩌고저쩌고… 정작 한해를 시작할 때는 행복한 일만 생기고, 경사스러운 일만 많고, 크게 길 하는 일만 있기를 바랬는데, 한해를 끝내고 보니까 좋은 일도 있었지만 안 좋은 일도 많았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다사다난한 일들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게 우리 중생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스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봄을 맞이했을까요?

춘색무고하 (春色無高下) 봄볕은 위아래가 없는데,

화지자장단 (花枝自長短) 꽃가지는 저절로 길고 짧구나.

<금강경> 야보송(冶夫頌)

봄빛은 산이든 강이든 벌판이든 집 마당이든 어디든 똑같이 평등하게 비춥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똑같은 봄빛을 받고도 개나리는 노랗고 진달래는 붉게 핍니다. 시냇물은 반짝거리고 나무는 키가 크게 자랍니다. 참 신기합니다. 똑같은 햇빛을 공평하게 받는데 다 제각각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다 시절인연에 따라서,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개나리가 ‘진달래보다 더 많이 펴서 인기를 독차지 해야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봄에 활짝 피는 것이 아닙니다. 진달래가 ‘올해는 작년보다 더 붉게 피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줘야겠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활짝 피는 것이 아닙니다. 진달래나 개나리나 똑같은 봄빛을 받지만 서로 시절 인연이 다르고 처한 조건이 다르다보니 생긴 것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것입니다. 봄이 되면 그냥 그렇게 피는 겁니다. 저절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자를 줄이면 스스로 自. 그러할 然. 자연입니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그렇게 피었다가 지고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매년 봄이 오면 “경사스러운 일만 생기게 해주세요. 다른 거는 다 필요 없고 아프지 않게만 해주세요.” 이런 소원을 빕니다. 인간이나 개나리나 진달래나 다 똑같은 중생입니다. 다 자연의 일부고 자연스럽게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인간들은 나름대로 소원하는 바가 있고 욕심이 있고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왜 인간만 유별날까요?

춘유백화추유월 (春有百花秋有月)

하유량풍동유설 (夏有凉風冬有雪)

약무한사괘심두 (若無閑事掛心頭)

변시인간호시절 (便是人間好時節)

봄에는 백가지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아

여름엔 시원한 바람 불고

겨울이면 흰 눈 내리네.

만약 내 마음을 가로 막는 일이 없다면

사람 사는 일이 좋은 시절이 아니겠느냐.

무문관

이것은 무문관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합니다. 그냥 그렇게 합니다. 우리 인간사도 호시절이 될 수 있는데. 우리 마음에 뭔가가 맺혀서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만 않는다면 사람 사는 이 세상도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시절인연 따라서 살지 못할까요? 그건 우리 스스로가 마음으로 무언가를 집착하고 무언가에 끄달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꼭 이 일을 해야 되겠다. 내가 꼭 이것을 갖고 싶다. 건강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다 보니까 그 마음에서 매 순간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이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매년 한해를 시작하며 경사스럽기만 바라고 길하기만 바라다 보니 한해를 마감할 때면 지난 삶이 다사다난한 겁니다.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니까 나쁜 일도 있고, 행복한 일만 바라니까 슬픈 일도 있고, 기분 좋은 일만 바라니까 화나고 짜증나는 일이 있는 겁니다.

조주스님이 남전스님에게 “무엇이 도입니까?”라고 물으니,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평상심이 다른 게 아닙니다. 진달래나 개나리가 봄에 피었다가 지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이면 흰 눈이 내리는 이런 자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게 평상심입니다. 입춘이라고 복 많이 받게 해달라고 빌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면 반드시 번뇌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봄을 맞이해서 진달래와 개나리를 보면서 ‘평상심이 도다.’ 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 말한다. 자아도 없고, 개아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혼도 없이 온갖 선법을 닦음으롰 가장 높고 바른 개달으을 얻게 된다. 수보리여! 선법이라는 것은 선법이 아니라고 여래는 설하였으므로 선법이라 말한다. 금강경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금강경의 이 구절은 “春色無高下하나 花枝自長短이니라” 라는 게송과 같습니다. 봄볕이 어디에나 똑같이 평등하게 비추듯, 법은 평등하야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각심(無上正覺心), 가장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면 이 무상정각심을 얻을 수 있느냐.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의 마음, 즉 나라고 할게 없다는 생각, ‘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 ‘나는 중생이다.‘라는 생각, ‘나는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수행을 하면 우리가 무상정각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으로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니까 무언가에 집착하고 욕심을 내고 애착을 합니다. 그래서 번뇌심이 우리 안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입춘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이 오면 항상 경사스럽고 우리 집안에 길한 일만 생기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똑같이 봄이 오는데 진달래나 개나리는 우리처럼 봄이 왔다고 해서 삼재기도 올리고 입춘기도 하고 축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개나리와 진달래는 매년 봄이 오면 온 산에 아름답게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집니다.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입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지는 이치를 명심한다면, 인간의 삶도 항상 행복할 것입니다. 다만 집착하는 마음, 특히 내가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마음만 버리면 됩니다. 크게 길하고 많이 경사로운 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때그때 시절인연에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多慶이고 大吉입니다.

2020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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